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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전쟁 가능성

한반도에 전쟁이 난다면?… ‘한몫’ 챙긴 사람은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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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미국은 무려 416조 7150억원 규모의 무기와 식량을 연합국에 수출해, 유럽을 누르고 최고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2차대전 패전으로 공장조차 돌리지 못했던 일본은 한국전쟁 개전 후, 단 1년 만에 GDP의 2.75%를 벌어들였다. ▲일본 건설산업은 훈련장, 특수전 학교, 사격장, 병원, 휴양소, 항만시설, 무기고, 공병 시설 등을 지으면서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파산 위기에 놓였던 도요타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미군이 트럭을 대량 발주하면서 기사회생했다. ▲2차 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이 오늘날의 국부를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국전쟁 특수’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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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North Korea)’이 2017년 구글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 4위에 올랐다. ‘제3차 세계대전(World War3)’, ‘핵 전쟁(Nuclear War)’ 등의 단어는 2004년 이후 역대 최고 수준으로 검색됐다. 한반도 뿐 아니라 전 세계가 혹시 모를 전쟁 가능성을 염려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전쟁은 인류에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남겼다. 하지만 일부 국가는 커다란 경제효과를 누리기도 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인명 및 재산 피해를 낳았던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일부 국가는 막대한 부를 얻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미국이다. 

“미국, 전쟁으로 전례없는 정치-경제 권력 누려”

미국 메트로폴리탄 주립대학(Metropolitan State University) 역사학과의 크리스토퍼 J. 타사바(Christopher J. Tassava) 교수는 “미국의 산업은 전쟁으로 인해 활기를 얻었다”며 “2차 세계대전은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의 주요 경제를 심각하게 손상시켰지만 1945년 이후 미국은 전례 없는 정치-경제적 권력을 누렸다”고 분석했다. 타사바 교수의 글은 미국 ‘경제사협회’(The Economic History Association)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많은 경제지표들은 미국이 여전히 대공황에 빠져 있음을 시사했었다. 그런데 미국 연방정부는 1939년~1941년에 걸쳐 민간 상품보다 군비 및 기타 전쟁 물자를 생산하는 쪽으로 산업 기반을 바꾸면서 재기를 꾀했다. 

항공기 생산 28배, 군수품 20배 증가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당시의 전쟁 관련 물자의 주요 생산지표와 종전 직전인 1944년 지표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상당했다. 1939년 당시 각 물자의 생산지표를 100으로 볼 때, 1944년 항공기는 2805로, 무려 28배나 늘었다. △군수품은 20배(2033) △조선(造船)은 17배(1710) △알루미늄 4.7배(474) △고무 2배(206) △철강 1.9배(197) 더 많이 생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공군역사지원실(Air Force History Support Office)의 집계에 따르면, 1941~1945년까지 5년 동안 미국에서 생산된 항공기는 총 12만7766대에 달했다. △폭격기 4만9123대 △전투기 6만3933대 △화물기 1만4710대 등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미국, 연합국에 400조원 규모 군비 수출

이 많은 무기는 1941년 3월 11일 발효된 ‘무기 대여법’(Lend-Lease Act)에 따라 연합국으로 흘러들어갔다. 미국이 ‘연합국의 병기창’ 역할을 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미국이 연합국에 수출한 무기 및 식량 규모는 약 325억 달러에 달했다. 그 중 138억 달러는 영국으로, 95억 달러는 소비에트 연합으로 수출됐다. 

2차 대전 당시 달러가치는 현재의 1/12 수준. 이를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미국이 연합국에 수출한 무기 및 식량 규모는 총 3900억 달러(416조 715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방위산업, 영화산업 본격 성장… 백화점 판매량도 급증 

미국의 방위산업은 이때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1912년 창업한 록히드 사(Lockheed Corporation)는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1만9278대가 넘는 항공기를 미군에 납품하면서 미국 전시 생산 총량의 6%를 차지했다. 1939년 설립된 노스롭 사(Northrop)도 전시에 성장하기 시작, 당시 미국 정부와 가장 많은 금액을 계약한 기업 중 상위 100위에 꼽혔다.   

군사부문 뿐 아니라 민간부문의 지출 역시 급증했다. 타사바 교수는 “할리우드는 영화 티켓을 팔아 호황을 누렸고, 경마장은 1943~1944년 합법적 도박이 허용돼 전례 없는 돈을 벌었다”고 했다. 1942년 미국인들은 의약품을 9500만 달러어치 소비했고, 1944년 11월 백화점 판매량은 어느 때보다도 증가했다. 이밖에 고기와 초콜릿, 타이어, 석유 시장도 전쟁 중 호황을 누렸다. 

코카콜라, 독일에서만 1억병 생산

미국의 코카콜라도 전시 중에 상당한 이득을 취한 기업 중 하나다. 코카콜라는 1941년 독일에서 공식 전쟁물자 공급업체로 선정됐다. 코카콜라는 1942~1945년 초까지 독일에서만 1억 병이 넘는 음료수를 생산했다. 

벨기에 출신의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인 자크 파월(Jacques Pauwels) 박사는 책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에서 미국 기업의 대독일 투자 금액을 1941년 당시 총 4억7500만 달러로 추산했다. 현재의 달러가치로 계산해 보면 약 57억 달러(6조 904억원)에 달한다. 

박사는 독일에 진출해 큰 이윤을 남긴 미국 대기업으로 △포드(자동차) △GM(자동차) △스탠다드오일 오브 뉴저지(현재 엑슨모빌․석유) △듀퐁(화학) △유니온카바이드(석유 화학) △웨스팅하우스(원자로) △제너럴일렉트릭(전자) △굿리치(항공우주 방위산업) △이스트만 코닥(사진) △코카콜라(음료) △IBM(컴퓨터) △ITT(전자) 등 20개 기업을 꼽았다. 




전범국가 일본, 한국전쟁 이용해 재기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중에 돈을 벌었다면, 일본은 종전 후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경제 성장을 이뤘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며 국가 재산의 42%를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전쟁이 끝난 1945년의 경제수준은 1920년대로 돌아간 상태였고, 전력난으로 모든 공장이 가동조차 제대로 되지 못하던 상태였다. 그랬던 일본이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까?

2차 세계 대전 중에 서로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던 미국과 일본은 종전 후 강력한 외교적 동맹관계를 형성했다. 미 국무부는 미국과 일본의 관계를 “미국의 안보를 위해 아시아에 둔 초석이자, 지역의 안정과 번영을 위한 핵심”이라고 지칭했다. 

일본 ‘유엔군의 병기창’ 역할하며 건설 특수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을 기반으로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에서 ‘유엔군의 병기창’ 역할을 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전쟁 개전 후 1년간 일본이 전쟁특수로 벌어들인 돈은 1134억엔에 달했다. 이는 1950년 일본 GDP(약 4조엔)의 2.75% 수준이었다.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미국은 그해 9월까지 한국과 일본에 25만 명의 미군을 배치했다. 일본에는 1952년까지 2500개소의 각종 미군시설이 들어섰다. 육해공군을 위한 훈련장, 특수전 학교, 사격장, 병원, 휴양소, 항만시설, 무기고, 공병 시설 등을 세워야 했기 때문에 일본의 건설 산업이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1947년 맥아더 장군은 태평양 전쟁 때 버려진 무기와 장비를 회수, 수리하는 일을 일본 회사에 넘겼다. 일본은 1950년 ‘방위생 출산 위원회’를 마련해, 이 기관을 통해서 미국에 군수품을 납품했다. 

한국 전쟁 때 납품한 군사물품만 26조원 규모

한국 전 초기 4달 동안 일본의 군수 기업들은 △소화기(小火器) 48만9000정 △대포 1418문 △통제장비 3만 4316개 △전투차량 743대 △일반 차량 1만 5000대를 출고시켰다. 1952년 6월까지 군수품 생산에 참여한 일본 공장은 약 400개였다. 이후에는 860여개로 증가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제공한 군사물품 금액만 25억 달러 이상이었다고 한다. 당시 달러 가치가 현재의 1/10 수준이었다고 하니,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250억 달러(26조 7125억원)에 해당하는 거액이다. 

도요타(TOYOTA) 자동차 역시 당시 이득을 본 기업 중 하나였다. 책 ‘도요타-존경받는 국민기업이 되는 길’에 따르면, 한국전쟁 직전 파산 위기에 놓였던 도요타는 한국전쟁 덕분에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미군이 도요타에 트럭을 대량으로 발주하기 시작하면서 36억엔의 ‘전쟁 특수’를 누렸기 때문이었다. 

자원착취 ‘총동원 연맹’ 소속 조선인만 450만명

2차 세계대전을 치르는 동안 일본은 조선총독의 지휘 아래 ‘총동원 연맹’을 만들어 우리나라의 물자와 인적자원을 강제로 동원했다. 여기에 소속된 조선인만 무려 457만 9162명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조선 인구는 2000만명. 일제가 한 집에 한명 꼴로 ‘친일 앞잡이’를 만들어 놓고 같은 조선인을 착취하게 한 셈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친일 논쟁의 단초를 당시 제국주의 일본이 심어놓은 것이다. 

한국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총 238명이다. 그러나 중국, 필리핀, 네덜란드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까지 합하면 실제 위안부 피해자 규모는 최소 4만명~최대 3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강제징용 피해자 규모는 무려 700만명(누계). 당시 조선 인구가 2000만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린이와 노인을 제외한 성인 남성 대부분이 강제 징용의 피해자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945년 해방된 조선은 광복의 기쁨을 누리지도 못한 채,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한국전쟁으로 인해 총 24만 4663명이 사망했고, 12만 8936명이 학살당했으며, 22만 9625명이 부상을 입었고, 8만 4532명이 납치당했다. 30만 3212명은 행방불명됐다. 

재산피해도 막대했다. 남한은 일반 공업시설의 40%가 피해를 입었고, 북한은 전력의 74%, 연료공업의 89%, 화학공업의 70%가 피해를 입었다. ‘한국전쟁 특수’는 일본이 오늘날의 국부를 이루는데 막대한 기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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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8, 업데이트: 2018-01-08 05:3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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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길동